초청작
Invitational work
Crater Invertido (Mexico)
Adrien Flament (France)
Alexandre ERRE (France)
Tong Ka-Yan (Hong kong)
Mutsumi Tomosada (Japan)
Orr menirom(Israel)
Pierre Feller (France)
Sarawut Chutiwongpeti (Thai)
Taehun Kang (Korea)
Cráter Invertido
Mexico
Permanent Holydays How Come Some Leave and Others Stay Behind?_30min59sec_2016
영상은 엘리베이터 내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사파타주의자가 끔찍한 학살을 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 공포는 6인의 전신 탈을 쓴 인물들이 공모를 위해 모이게 된 계기이다. 지난 광주 항쟁의 공표의 신비로운 힘과 소문에 따라, 캐릭터 간의 관계는 도시의 일상에 던져진 상상 속 주문에 대한 저항을 촉진한다. 일반화된 현재의 강렬한 위기와 비극에 불구하고 죽음이 우리 모두에게 공동의 기억을 심어주는 법에 대한 영상이다.
Permanent Holydays How Come Some Leave and Others Stay Behind?, Video, 30min. 59sec. 2016The film starts with the brutal murder of a hooded zapatista inside an elevator, producing a tremor capable of gathering the six full body costumed characters into conspiration. Driven by a mysterious force and rumours of a last communique from the Gwangju people´s uprising, the relations between characters evoque revolt through an imaginary spell thrown with quotidian actions inside the city. It is a film about how the dead invoque us to reimagine collective memory despite generalized crisis and despair haunting the tempestuous shared present.
Crater Invertido는 2011년에 탄생한 멕시코 시티 근거의 단체이다. 시각 미술과 자유 언론을 전공한 11명의 멤버로 구성되어, 단체는 여러 학문 분야의 프로젝트를 위한 워크샵, 다양한 행사를 위한 포럼, 전시를 위한 공간도 운영 중이다. 이런 활동들은 복사기 하나에 집중된다. 복사기는 그들도 도구와 지식을 나누기 위해 사용한다. 또한 멕시코의 독립 편집 네트워크의 개시를 위한 활동에 참여 중이다.
Crater Invertido is a Mexico City-based collective born in 2011. Composed of eleven members educated in visual arts and free media, they evenly run a space that works as a workshop for multidisciplinary projects, a forum for various events, and an exhibition space. These activities converge in a common printing machine from which they share tools and knowledge, as well as participating in the creation of an independent editorial network in Mexico.
Adrien FLAMENT
France
LEADERSHIP_3min39sec_2015
어떤 관광지에서, 한 남자가 카메라 화면에 잡힌다. 그는 그 중간에 서서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킨 후 30초가 지나자 떠난다. 사막과 같은 군중 속에서 빨대를 찾고 있는 것 마냥.
A touristic place, a man enter into camera range, stop in the middle, and with his finger, point the sky, waiting 30s to leave. A match looking for the straw, In the desert of the crowd.
내 작업의 한 부분은 사람의 동정심과 관심이 어떻게 행동에서 드러나는 가에 대한 연구이며 그 행위에 대한 궁금증이다. 다른 부분은 건축학적인 의미이든 사회적 의미이든 공간이라는 것이 우리의 행동을 좌우하는 방법에 대한 흥미이다. 이런 면에서 나는 사회학, 뇌인지 과학, 언어학 연구에 대한 굉장한 관심을 갖고 있다. 나는 글을 쓰고, 설치 미술을 하고, 작곡을 하고, 사진을 찍는다. 나는 내 연구를 제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모든 것을 다 시도한다. 일상에서 나는 그냥 도시에서 살아남으려 발버둥 치는 박물관의 기술 보조일 뿐이다. 사실 그저 내가 자란 고향의 시골로 돌아가길 희망하고 있다.
In my art practice, in a side I’m interested to show how empathy and sympathy appear in the behavior of a person, and trying to wonder why. And in another side, I’m interested to show how a space, which can be architectural or social, can build our behavior. In these ways, I’m really interested in the new researches in sociology, neuroscience and language studies. I write, make installations, make music, take photos, I do all I can to find the best way to show my researches. In the everyday life, I’m just working as technical assistant in a Museum, trying to survive in a city, an hoping to find a way to come back in the countryside where I grew up.
Alexandre ERRE
France
Alexandre Erre는 사회적, 문화적, 젠더 이슈에 집중된 작업을 한다. 그는 독립을 향하는 프랑스의 식민지이자 그의 고향인 뉴칼레도니아를 비춰 이 주제들에 접근한다. 그는 수많은 질문들을 던지기 위해 공상을, 그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매개들을 이용한다. 종종 새로운 내러티브를 표현하기 위해 상상 속의 과거와 미래의 파편을 사용해서 조각을 하며, 현재의 문제들에 대해 얘기한다. 영상 역시 그가 작업하는 문제의식들과 이미지에 항상 유념해야 함을 상기시키는 긴요한 작업이다.
Alexandre Erre works focuses on social, cultural and gender issues. He approaches these topics through the prism of his birthplace, New-Caledonia, a french colony on its path toward independence. He uses fiction as a way to address these questions and he uses every medium at his disposal. He often works with sculpture to talk about contemporary concerns by using fictional fragments from the past, the future and create a new narrative. Videos are also at the core of his practice with the imperative to always be mindful of the questions and imagery he works with.
Voilà ce que nous avions, voici ce que tu nous laisses_12min32sec_2017
“이 곳은 우리가 가졌던 것이며, 이 것은 우리가 남기는 것이다.” 카낙 부족의 추장 아타이가 뉴칼레도니아의 식민지 관리자인 올리 장군 앞에서 흙으로 가득한 가방과 돌로 채워진 가방을 비우며 한 말이다. 사람들은 노예제도와 그 식민 지배자들에 대한 계속되는 상기를 떨쳐버리려고 한다. 이 비디오는 뉴칼레도니아의 수도인 누메아 광장에 서 있는 올리 장군의 상을 맴돈다. 이 작업에서 카낙의 사람들은 그들의 문화적 유산과 역사의 복구를 위해 식민지배 이전의 지명들과 그들이 뜻하는 바를 얘기한다.
“Here is what we had, this is what you leave” said the kanak tribe chief Ataï to the General Olry, the colonist administrator in New-Caledonia as he emptied one bag of soil and another of rocks. Around the world people are fighting against the lingering reminders of slavery and its colonial oppressors. This video revolves around a statue of the General Olry that stands on the main square of Noumea, New-Caledonia’s Capital city. In this work, old kanaks are talking about the toponymy of places and explains what they meant before the colonization, to retrieve their cultural heritage and history.
Fair Trade_4min 33sec_2017
이 퍼포먼스는 Linda Trime와 Alexandre Erre 두 명의 예술가를 동원했다. 작품의 제목, 공정거래는 신식민주의에 퇴색된 동명의 마케팅 시스템에서 비롯되었다. 그 뜻은 “생산자에게 공정한 임금이 돌아가는 개발도상국의 기업과 생산자 간의 교역” 이다. 두 퍼포머들은 진실된 공정거래 관계를 맺는데, 그 방법이란 레녹스의 영 식민 콜렉션의 미국산 접시를 이용해 영국산 실론티를 한 입에서 다른 입으로 계속해서 주고 받는 것이다. 두 예술가 모두 프랑스 식민지배와 성소수자 연구에 관한 가족력이 있다.
This performance involves two artists, Linda Trime and Alexandre
Erre. The title of this performance, Fair Trade, comes from the
marketing system of the same name, plagued by neocolonial
ideology. Its definition is : “trade between companies in developed
countries and producers in developing countries in which fair prices
are paid to the producers”. The two performers engage into a true
fair trade, exchanging Ceylon british tea from one mouth to another
over and over using an american plate from the Lenox British
colonial collection. Both of the artists have their family history tied to french colonial history and to the queer studies.
La démocratie du Coucou_7min.29sec_2017
뉴칼레도니아의 사격장. 제목과 부제는 프랑스의 아나키스트이자, 선생, 의료 종사자, 그리고 파리 코뮨의 인사인 루이스 미첼이 쓴 글에서 인용되었다. 그는 1873년 당시 프랑스의 죄수 유형지였던 뉴칼레도니아로 추방당해 그 곳에서 7년을 살았다. 그녀는 1878년 부족장인 아타이가 이끈 프랑스 식민 행정부에 대항한 봉기에서 카낙의 편에 섰다. 후에 식민 지배 시스템에 대한 비유로 타인의 집을 강탈한 사람이 그 집이 누구 소유인지 투표를 하자는 주장하는 행태에 대한 글을 썼다.
A shooting range in New-Caledonia. The title and subtitles come from a text written by French anarchist, school teacher, medical worker, and important figure in the Paris Commune, Louise Michel. She was deported in 1873 to New-Caledonia, which was a french penal colony, and stayed there for seven years. She took the kanak’s side in the 1878 revolt against the french colonial administration, led by the tribe chief Ataï. She wrote this text as a metaphor for the colonial system comparing it to people taking someone’s home and then asking for a vote to decide to whom it belongs.
Feeding the multitude_11min24sec_2017
이 퍼포먼스는 인류의 부정적인 에너지를 잉어에게 전달하는 공상의 의식이다. 잉어들은 부정적인 기를 위한 그릇임과 동시에 항상 부정과 비관을 갈망하는 인간이기도 하다. 이 공상 의식은 고대의 “희생양” 관습과 같다. 사람들은 염소에 인간의 죄를 씌워 그 죄를 이끌고 가 죽기를 바라며 염소를 사막에 버린다. 이와 같이 잉어들은 저주를 전달하기 위해 부정적인 기를 가진 단어가 써있는 빵 조각으로 연명한다.
A performance around a fictive ritual where the caster releases onto the carps the bad energies of mankind. The carps act both as a vessel for these negative forces but can also be compared to the people, craving for negativity, always longing for more. This fictional rite emanate from the ancient religious practice of the “scapegoat” where the sins of the people would be cast upon a goat, then the animal would be sent into the desert to die, carrying the sins of men. The carps are fed with some bread, the words holding the bad energies are written on it to transfer the curses.
Le radeau de la joie_13min31sec_2017
“환희의 뗏목” 은 세가지 요소를 사용한다: 음악, 이미지, 텍스트. 뉴칼레도니아에서 촬영된 이 영상은 뗏목에서 노는 아이를 보여준다. 음악은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 이다. 텍스트는 뉴칼레도니아에 거주 예정인 프랑스 개척자를 위해 프랑스 식민 행정부가 편집한 책에서 발췌했다. 뗏목은 아이들이 싱크로나이즈드 발레단으로 변하는 스테이지이자 비유적 섬이 된다. 이 작업은 유럽의 자유, 박애, 평등에 대한 국가를 사용해 유럽 식민제국주의를 비판한다. 관객은 개척자들과 동등한 선상에 놓여 끝에는 이 아이들이 그들의 눈에는 가축과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Le radeau de la joie” conjugates three elements : music, image and text. Filmed in New-Caledonia, the video shows kid playing on a raft. The song is the “Ode to joy” by Ludwig van Beethoven. The text comes from a book edited by the french colonial administration for the french colonists who planned on coming to settle in New-Caledonia. The raft acts as a metaphorical island and a stage where the kids becomes dancers in an aquatic ballet. This work is a critic of the european colonial empires, using here the european anthem which was about freedom, love and equality. The reader is put in the same place as the colonist and we understand, in the end, that they see these kids as livestock.
Tong Ka-Yan
Hong kong
Tarmar site airline tour_11min40sec_2014
나는 외설적이고 비판적인, 시니컬한, 그리고 풍자적인 예술을 해왔는데, 결국 내가 그 작업들을 통해 세상에 아무런 변화를 일으키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혼란과 더욱 극심한 우울이 나를 찾아왔다. 이제는 그냥 사랑에 대한 예술을 하고 싶다.
I used to make arts that are very provocative, critical, cynical, sarcasticwhich frustrated me and made me even more depressed as I realized I didn’t change anything in life by making those works. I just want to make arts with love now.
Mutsumi Tomosada
Japan
1989년 효고 출생. 2014년 히로시마시립대학 대학원 예술학연구과 조각전공 졸업. 히로시마 거주. 사회와 역사 속에 존재하는 종잡을 수 없는 현상들에 대해, 신체를 사용하여 대치시킴으로써 시각화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작품은 입체와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여 표현하고 있다.
Born in Hyogo, in 1989, and works in Hiroshima. MFA in Sculpture, Hiroshima City University, in 2014. I confront with ambiguous events of society and history using the body and visualize it. The form of the work is various such as sculpture, video and installation.
Nothing Unsinkable ship_5min.38sec_2017
바다의 바닥에서 작은 배를 건져 올린다. 더 이상 뜰 수도, 나아갈 수도 없는 보트를 나르며, 나는 ‘나름’과 ‘날라짐’의 관계를 정정한다. 배의 선체와 무게에 닿는 파도의 변동과 함께, 나는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없다. 여객선에서 내릴 무렵, 나는 배에 남아있을 수 밖에 없는 상태의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음을 깨닫는다. 튼튼한 선체를 만드는 기술자들이나 배를 삼킬 수 있을 만큼 거칠게 파도 치는 바다에서 안전한 길로 인도하는 항해사들이나 둘 다 큰 힘이 있다. 거대한 두 개의 힘이 충돌할 때 나는 인간이 얼마나 세계를 조종할 수 있는지를 생각한다. 적어도 지금으로써는 침몰은 없다.
I carry a small boat out of the bottom in the ocean. As people carry boats that can neither float nor advance, I changed the relationship between ‘carrying’ and ‘carried’. With the fluctuations of the waves on the body and the weight of the boat, I could not get along in the direction I wanted to go.
When I get on a passenger ship and come to the offing, I realize that I am standing at the border of life and death in a state where I can only leave myself in the ship. Both the work of people who manufacture rugged vessels and lead safe routes on rough waves and the oceans, which sometimes swallow even ships are huge energy. When two huge energies collide, I think about how much people can control the world. For now, there are no ship sinking.
Orr Menirom
Israel
Limited Speech Holds Endless Misunderstandings_10min_2013
이스라엘 방송의 노안 촘스키와의 인터뷰는 비현실적인 꿈으로 변모했다. 그 방송은 촘스키와 인터뷰의 무의식을 전시했다.
A news interview with Noan Chomsky on the Israeli television turns into a surreal dream, revealing the subconscious of both Chomsky and interviewer.
Orr menirom의 작업은 현실과 거의, 혹은 완전히 인식할 수 없는 공간의 경계를 탐구한다. 본인이 찍은 영상과 적절한 자료를 섞어, 그녀는 문장을 자르고 붙이고 타인의 언어를 사용해 언어가 정치와 실존주의의 경계인가를 질문한다.
Orr menirom’s work explores the border between what is real and what is barely or beyoud perceptible. Mixing appropriated materials with self shot footage, she cuts and pastes sentences and uses other people’s word to question language as the border between the political and the existential.
Pierre Feller
France
Palmyre_2min27_2016
나의 작업은 팔미라라는 고대 도시의 유적을 구름 사이로 날아가며 바라보는 형상을 묘사한다. 바닥에 닫지 않고, 공중에 떠서 저 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궁금해할 뿐이다.
My video depicts an imaginary flyby over the ruins of the ancient city of Palmyra, through the clouds. We don’t touch ground, staying in the air, wondering what might happen down there.
영상은 진짜 팔미라의 영상을 담지 않는다. 대신 위성 이미지에 의존해 전체를 컴퓨터로 제작했다. 나는 우리가 항상 미디어의 정보, 인터넷 검색을 통해 형성한 거리감이 작업을 이런 방식으로 하도록 유도했다고 본다.
The video isn’t made of real footages of Palmyra, but in fact relies on online satellite imagery and was entirely done by computer. I think it is our distant point of view, mainly made of media information and internet researches that led me to do it this way.
Sarawut Chutiwongpeti
Thai
Sarawut Chutiwongpeti는 아래 나열된 국제 기구들에서 그의 예술적, 탐색적 연구를 통해 미디어 아트의 발전에 기여했다. 오스트리아, 브라질, 캐나다, 중국, 크로아티아, 덴마크, 이집트, 핀란드, 프랑스, 독일, 홍콩, 헝가리, 이탈리아, 일본, 말레이시아, 네팔, 노르웨이, 러시아, 싱가폴,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한국, 스페인, 스리랑카, 스웨덴, 스위스, 대만, 우크라이나, 영국, 미국. 그는 Chulalongkorn 대학의 순수응용미술 학부를 1996년 졸업했으 며, 2016년 MAPS의 순수 미술, 스위스 Lucerne 대학의 응용과학 미술 박사학위를 수여했다. 그는 1999년부터 현대미술가로 활동했다.
Sarawut Chutiwongpeti has contributed to the development of the media arts through his artistic and research practices at noted international institutions in Austria, Brazil, Canada, China, Croatia, Denmark, Egypt, Finland, France, Germany, Hong Kong, Hungary, Italy, Japan, Malaysia, Nepal, Norway, Russia, Singapore, Slovakia, Slovenia,
South Korea, Spain, Sri Lanka, Sweden, Switzerland, Taiwan, Ukraine, United Kingdom and United States of America. He graduated in 1996 from the Department of Fine and Applied Arts, Chulalongkorn University and Master of Arts in Fine Arts with Major
Art in Public Spheres (MAPS), Lucerne University of Applied Sciences and Arts, Switzerland in 2016. He works as a full time contemporary artist since from 1999.
Wishes, Lies and Dreams_6min53sec_2017
이 비디오 아트 프로젝트는 시점과 꿈의 매커니즘에 집중한다. 그 곳은 판타지와 무의식이 지배하며 마음과 영혼이 작용하는 시스템 밑의 상태이다. 동시에 구조의 (비)가시적 특성은 관객에게 작품과 작품이 전시된 공간에 대한 지각에 혼란을 준다. 그리고 물질의 기능과 모습과의 불명확한 관계를 일깨워주고 진실과 거짓 사이 경계의 신비로운 역장을 깨운다. 이 효과는 관객들이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관찰을 새로운 입장에서 하도록 상상하지 못한 접근법을 창안해 낸다.
“소원과 거짓, 꿈” 은 기억에 대한 경험을 탐험하려 예술과 판타지를 섞어 관객과 친밀감 및 감각적 공명을 탐험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 기억은 자연이 선사하는 엄청난 모험을 궁금해하고, 불안한 패턴을 인식하고, 떠오르는 기억들을 마주하고, 자연을 이해하게 한다. 무의식의 기억과 꿈을 표현 하기 위해 부분 부분 흐릿한 이미지와 결합시켰다.
The video art project works focuses on the mechanisms of perception and dreams, the private world of the world of fantasy and unconscious, the conditions underlying the system by which mind and spirit operates.
At the same time, the (in)-visibility of the structure ignites a confusion on the viewers’ perception of the work and of the space where it is placed, thus provoking and ambiguous relationship between the object, its function and its appearance, unlock a mysterious force field on the border of the truth and lie, that is able to create unexpected angles of approach which in turn force the viewer to take
up a new position in the observation of the surrounding world. “Wishes, Lies and Dreams” was created to explore intimacy and emotional
resonance with the viewer with combines artistic and fantasy to explores experience of remembering; questioning the fantastic adventure of nature, recognizing disquieting patterns, facing emerging memories,
understanding the nature. Segments are combined with blurring images and vague to create and impression of subconscious memory and dreams.
Taehoon Kang
Korea
현재 동의대학교 미술학과 조교수로 재직중이며, 독일 베를린 카프리스 혼 갤러리 전속작가(2007-2011)로 지냈다. 2017 평창비엔날레와 2010 부산비엔날레 2008 광주비엔날레 등 주요 전시 참여했다.
Currently working as assistant professor in Dong-Eui University, department of fine art, he had been a staff artist in Caprice Horn Gallery in Berlin, Germany for 4 years from 2007 to 2011. He has participated in major exibitions, the cases are as follows. 2017 PyeongChang Biennale with the work named 'The five Moons: Return of the Nameless and Unknown', 2010 Busan Biennale with 'Living in Evolution' and GwangJu Biennale with 'Annual Report: A Year in Exibitions'.
벌초 Mowing_9min11sec_2013
한쪽 벽면에 투사된 영상 <벌초>는 벌초하는 장면과 지나간 혁명의 모습들을 반복해서 돌아가는 제초기에 오버랩한 것이다. 사운드가 제거된 초반 화면에선 사운드가 시각화되어 나타나고, 후반부 화면이 검은 공백 상태로 뒤덮일 때 예초기의 기계음이 교차하여 울리기 시작한다. 이 영상은 관객의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죽은 조상이 호명하는 착한 후손이 되기 위한 전통의 수행과 정치적 올바름의 호명에 놓인 혼돈 상황일 수 있다. 다른 관점에서 혁명적 가능성을 제거하는 음모론으로, 역으로 반공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환상을 상연해주는 것으로 읽을 수도 있다. 또 자연과 인간의 대립으로 해석하는 것 등도 가능하다.
변화하는 것은 지각된 대상들이나 사물들의 상태인 것이 아니라 지각된 사물들의 상태를 끔찍하게 보이게 하는 것에 관심을 두었다. 라캉에 따르면 직접적인 동물적 생명-경험 위로 인간세계를 고양하는 것은 ‘맹목적’이고 무의미하며 자동적인 반복운동 속에 있는 기계이다. 구성적으로 ‘어긋난’ 인간이라는 정치적 함축은 근본적으로 양가적이다. 그리고 이것은 ‘부유하는 기표’로 기능한다.
The film work on one wall called <mowing> has images of overlapping mowing action and revolutionary events in history. At the beginning of the film, starts as muted sound becomes visualized, and towards the end, the screen faded away and stay solid black while the sound of machine plays. This work can be read as many different points depending on viewers. It could become a circumstances of worshiping ancestors by act in morality of politics and traditions. From the other point of view, as conspiracy to eliminate the possibilities of revolution, to propose their fantasy to people captured with ideology of anti-communist. Also, it could be comprehended as conflict between nature and human.
Transforming objects are not recognized materials, but they are focused on making objects to look terrible. According to Lacan, promoting human life over direct animal lives, experience is ‘reckless’ and meaningless, automatic repetitive machine. The political implication which structurally ‘dislocated’ human is ambivalent. And this functions as ‘floating method’.